암호화폐가 세계 화폐를 통합할 수 있을까?
각 나라들이 수많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대부분 나라들은 그들의 화폐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국가간 무역을 수행함에 있어 환율의 변화에 따른 위험으로 인한 적지 않은 혼란을 주는 것 처럼 보인다. 만약 하나의 화폐로 통합되는 경우, 세계 시민으로써 우리는 사람들간의 화합과 통일된 세계가 되어 우리에게 많은 편익을 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최근 관심을 받고 있는 암호화폐, 비트코인, 이더리움, XRP 등도 이러한 관점에서 각각이 세계 표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먼저 이런 ‘통화극대화(monetary maximalism)’에 대한 생각도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의 암호화폐가 유일한 화폐로 정착되거나 아니면 다른 화폐들에 비해 더 나은 지위를 얻게 될 것이라는 주장(weak monetary maximalism)과 하나의 암호화폐로 통일됨은 물론 은행은 물론 현존하는 기존의 화폐 시스템을 모두 대신 할 것이라는 주장(strong monetary maximalism)이 있다.
하지만 문화충격이나 지역적인 차이들이 개별적인 지역 편향적인 화폐를 더 선호하게 되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유일한 화폐로 통합되기는 어렵다는 반론을 제기 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은 각기 다른 문화와 전통 때문에 종교가 하나로 통합되기 어려운 역사적 사실과 유사하다. 나는 거시경제학 이론의 관점에서 통화극대화가 이루어 질 것이라는 믿음을 비판해보고자 한다.
단일 통화의 장단점
동일한 화폐를 공유하는 것은 국제무역에서 발생하게 되는 따르는 제반 비용을 줄여줄 수 있지만, 거시 경제 정책을 통한 신속한 조정을 불가능 하는 상충 관계(trade-offs)가 존재한다.
먼저 장점을 살펴보자면, 국제무역, 즉 국가 간의 거래를 쉽고 예측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한국에서 각 지방자치 단체 마다 다른 통화를 사용하는 경우를 예로 들면, 제주도에서 생산된 감귤은 다른 지방자치 단체의 통화 가치가 변동함에 따라 그 수익이 요동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단점을 살펴보자. 같은 통화를 사용하는 지역은 같은 통화 정책의 영향을 받게 된다. 한국은행이 이자율을 발표하면 영토 내의 모든 자치 단체에도 이 효과는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 미국 연방 은행이나 유럽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각 지역에 같은 영향을 미치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한 지역이 호황을 다른 지역이 불황을 겪고 있는 경우 중앙은행은 각 지역에 알맞는 정책을 펼 수가 없다. 확장적 통화정책을 고수하는 경우, 불황인 지역에는 경기를 진작시키는 효과를 줄 수 있지만 호황인 지역에는 물가상승의 압력을 더 크게하는 악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단일 화폐는 개별 지역들이 환율 변동을 통해 다른 지역과의 국제무역은 물론 개별 경제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까지 제거해 버린다. 각국이 다른 통화를 사용하는 경우, 자국 화폐의 평가절하는 자국 상품의 상대 가격 하락을 통해 국제 경쟁력이 상승되고 수출량이 증가하며 수입품의 상대 가격 상승으로 수입 감소를 가져온다. 결과적으로 무역수지 자체가 개선되어 자국 경제를 활성화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는 단일 화폐를 사용하는 경우 발생할 수 없다.
유럽연합으로 통합되기 전 독일과 그리스를 생각해 보자. 독일이 그리스에 비해 특정 산업의 생산효율이 높았는데 이는 독일이 해당 생산물을 더 효율적으로 싼 가격에 생산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독일은 노동자의 임금을 더 올려주고 그리스와 비슷한 조건으로 경쟁하거나, 독일의 생산물 가격을 더 싸게 팔 수 있었다. 반대로 그리스는 임금을 하락시켜서 독일과 경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경제적 관점에서 노동시장의 가격인 임금은 경직적이어서 쉽게 감소시키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화폐통합 전에는 그리스의 화폐가치가 평가절하되어 임금 하락과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경제학자 먼델은 1999년 왜 세계 경제가 단일 화폐를 사용해서는 안되는 지에 대한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주된 이론은 ‘최적통화지역(Optimum Currency Area)’이라는 개념을 통해 화폐 통합의 장단점을 비교한 것이다. 최적통화지역은 얼마나 그 지역이 경제적 통합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지원하는 각종 제도의 질이 어떠한 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 예로 50개 주로 구성된 미국은 단일 화폐를 사용함은 물론 동일한 언어와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어떤 경제정책이 하나의 주에는 이익을, 다른 주에는 손실을 가져 올지라도 중앙정부는 발생된 순편익을 재분배 해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27개 국가의 연합인 유럽연합의 경우, 한 국가에 발생한 이익을 다른 국가로 직접 이전해 줄 수 있는 정치적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미국의 한 주에서 다른 주로 노동의 이동이 필요한 경우를 독일 노동자가 그리스에서 일하기 위해 옮겨 가는 경우와 비교해 보자. 독일 노동자는 그리스어를 추가적으로 배워야 하는 데 비해 미국 내에서의 언어장벽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비용 차이는 굳이 법적 또는 문화적 장벽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암호화폐의 미래
먼델은 단일 통화의 사용은 다음과 같은 조건이 만족될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생산요소, 특히 노동의 이동이 자유로울 것, 정치적 통합 기구가 존재할 것, 경제적 충격이 있을 때 실업과 인플레이션 등의 결과를 감내 할 수 있을 것, 경제연관성이 높을 것, 역내 각국의 산업구조가 다변화 되어 있을 것 등이다.
암호화폐를 각각 항목들에 비춰 본다면 현실적으로 지금의 금융 시스템을 대체하기는 아주 힘들어 보인다. 인터넷과 각종 시스템의 발달로 노동의 이동성이 향상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리적인 한계를 가진 수많은 직업들이 존재한다. 정치적 통합 기구는 단일 화폐의 꿈과는 아직 너무 소원한 듯하고, 각 나라의 역사나 전통에 따라 경제 충격에 대비하는 자세는 너무 다르다.
결론적으로 암호화폐의 기존 화폐 대체 보다는 병존하거나 경쟁하는 상황을 보일 것처럼 보인다. 역사적으로 50개 국가 이상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은 것을 보면 암호화폐가 시민들의 부를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지켜줄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