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가 금융위기에서 다시 배워야 할것들

2010년대 경제현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경제학을 잊어버리고 있거나, 적어도 경기침체와 관련된 경제학의 일부분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았다. 주택 시장 추락, 금융위기, 그리고 이어진 경기침체는 일반적인 거시경제학적 지혜의 대부분을 매장해 버린 것 같았다.

2008년 이전에는 대부분의 거시경제 모형들이 금융산업을 전혀 포함하지 않았고, 금융위기가 경제를 완전히 망쳐버릴 수 있다는 가능성도 생각하지 않았다. 벤 버냉키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은 그의 모형에서 이런 가능성을 연구했던 성과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경제위기의 형태도 일부 경제학자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다. 오랫동안 지속된 미국의 쌍둥이 적자,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달러의 약세와 미국 이자율의 상승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자 자금은 미국으로 흘러들어오고, 이자율은 감소하고, 달러는 강세를 이어갔다. 일부 거시경제학자들도 연방 중앙은행이 위기와 싸우기 위해 이용한 양적완화(QE)와 이자율 0% 정책(ZIRP)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라 생각지만 미국에서는 2008년 이후로 2%의 인플레이션 목표를 잘 유지하고 있었다. 수십년간 경제학자들은 금융을 신속히 자신들의 모델에 삽입하고, 비전통적 아이디어들을 실험하기 위해 노력했고, 경제학 전문가들과 수많은 금융 전문가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 시작했다. 포스트케인즈학파, 현대화폐이론(Modern Monetary Theory) 같은 생각들까지 당시는 잠재적인 시기였고, 불확실성이 있었다.

그 후 2020년대가 되면서, 코로나 충격의 잔재가 있었고, 모든 것들이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지난 2년간 일어난 일들은 거시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어떤 가정을 세워야 하는지 재고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2010년대 받아들여지던 비전통적 교훈들이 의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2008년 이전에 주류 거시경제학을 통해 예측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이 사실은 금융위기를 통해 우리가 배웠던 교훈들이 모두 잘못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할지와 알 필요가 없는 것을 정리해주고 있다.

몇 가지 예를 통해 설명해 보도록 하자.

  1. 시장의 붕괴가 항상 실물경제의 붕괴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2008년에 우리가 얻었던 가장 큰 교훈은 금융시장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금융위기는 대침체를 부르는 직접적인 원인이었음이 자명했으며, 대공황이나 1989년 이후의 일본경제, 1990년의 스웨덴의 예를 통해서 우리는 2008년 이전에도 충분히 이런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2008년 이후에 이르러서야 자산 시장과 금융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현상이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거시경제 전문가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또한 금융위기 이후 경기회복이 둔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진리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그 분석은 화폐가 실물 경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남겨두었다. 2007년에서 2008년 동안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의 큰 금융 충격이 있었다. 주택가격의 폭락과 베어스턴과 리만브라더스의 실패로 인한 금융 시스템의 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두 사건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기 때문에 이 두 사건이 불러온 효과를 분리하기가 정말 어렵다. 도대체 금융위기의 원인은 이 둘 중 무엇이란 말인가?

딘 베이커를 필두로 한 많은 사람들은 금융 시스템이 아니라 주택 가격 붕괴가 대침체의 주된 원인 이었다고 믿는다. 신규 주택 건설이 감소로 생기는 악순환은 그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에 주된 경로는 주택 가격 감소로 더 가난해 졌다고 믿는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는 소득효과라고 보는 그들의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이러한 주장은 결정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주식 시장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한다. 2000년에 있었던 주식시장 붕괴 이후에는 경기침체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최근 주식이나 암호화폐 가격의 폭락에서도 그러했다. 그럼 유독 부동산 시장에서만 결론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인가? Case, Quigley, and Shiller의 2005년 논문을 보면 주식 자산의 가격 하락은 부동산 가격 하락에 비해 소득효과가 미미함을 보이고 있다. 이는 주식은 주로 고소득층이 소유하고 있는 반면 부동산은 중산층 자산의 근간이며 중산층이 그들의 자산 감소에 따른 소비지출 감소를 크게 하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은 현재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올려 주택 가격이 하락하고 있지만 아직 경기침체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2022년 9월 기준 주택 가격의 하락은 대침체 시작 시기인 2007년 후반기 직전과 흡사하게 급락하고 있다. 최근인 10월, 11월, 12월의 데이터 집계가 되지 않아 그림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 감소는 계속 진행중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2023년 경기침체를 예상하고 있지만 아직 그 신호는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

주택시장 버블이 아니라면 금융위기가 대침체의 주된 원인이라는 주장을 대안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금융시장과 실물시장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블름버그, 전 연방은행위원 등 많은 평론가와 민간부문 전문가들이 이 주장을 따르고 있다. 물론 주택시장 버블이 주식시장 버블에 비해 충격이 더 큰 경향이 소득효과 때문일 수도 있지만, 주택시장 버블 붕괴로 인해 발생하는 부채 문제도 고려해 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기지를 통해 주택을 구입하며, 그 모기지는 어떤 식으로든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기록을 남긴다. 또한 은행은 이를 담보로 영업을 하여 더 많은 부채를 발생시킨다. 따라서 모기지 상환에 문제가 생긴 가계가 하나둘 나오다 보면 결국은 은행 시스템 자체의 붕괴를 일으키게 된다. Jorda, Schularick, and Talyor(2015) 논문을 보면, 버블과 부채는 함께 은행 시스템 붕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위험한 조합이라고 주장한다. 2010년대에 우리는 극심한 경기침체와 더딘 경기회복을 가져다 준 버블의 위험함에 대해 배웠지만 지금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할 것은 은행 시스템의 붕괴라고 보여진다. 주목해야 할 점은 버블 자체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부채비율이나 금융산업의 취약성에 대해 특히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1. 정부 부채의 크기도 중요한 문제이다.

대침체로 부터 회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과도해 보일 정도의 정부지출 증가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이자율이 0%인 상황에서 깊은 경기침체에 빠진 경우 정부지출이 매우 효과적이었다는 사실은 2010년대를 견디며 얻은 중요한 교훈이었다.

몇몇 학자들은 이자율이 크게 오를 것이라 걱정하기도 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이로인해 많은 거시경제학파들은 공공부문 대부시장모형의 종말이라는 비평을 남기기도 했다. 대부시장모형은 대부자금을 일반적인 재화나 서비스로 간주하여 수요와 공급에 의해 그 가격인 이자율이 결정된다는 단순한 모형이다. 만약 대부자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 이자율이 상승하고, 대부자금 시장에 유용가능한 자금이 많으면 공급이 증가하여 이자율이 감소한다는 시장이론에 기반한 모형이다. 하지만 현실은 실제로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 부채는 정부발행 공공채,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 은행 대출, 모기지 등으로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며 각각 다른 이자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시장모형에서는 모든 수요들을 같은 것으로 간주하거나 완전대체제로 보고 있다. 마치 공공채가 직접적으로 회사채나 모기지 등과 경쟁하는 것으로 가정하는 것이다. 만약 현실에서도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앙은행의 채권 발행으로 금리인상을 단행하면, 공공채뿐만 아니라 회사채나 모기지 가격에도 직접적인 영향이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확장적 정책은 총수요의 증가, 즉, 민간의 상품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고 경기회복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로 기업들은 투자를 늘리게 하는 효과도 있다. 때로는 정부 지출의 지출 증가가 민간 투자를 위축시키는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 대신 반대의 효과(crowding in effect)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거시경제 전체를 대상으로 한 이자율 분석에서는 대부자금 시장모형은 항상 유용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현대화폐이론(Modern Monetary Theory)은 어떠한가? MMT 학자들은 정부 지출 증가의 이자율 효과는 미미하며 심지어 이자율을 낮추는 효과를 강조하기도 한다. 2010년대의 유럽과 미국, 그리고 1990년대 일본의 경험을 돌이켜보자. 당시 경제전문가들과 금융시장에서는 정부지출의 증가가 가져올 이자율 상승을 우려하였고, 결국 이 나라들의 지속적인 정부 부채 증가는 국채 수익율의 지속적인 하락을 보였다. 과도한 재정적자를 응징하기 위해 채권시장에 개입해 수익율을 올린다는 전설의 국제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주 최근에는 영국의 리즈 트러스 총리가 감세정책을 발표하자 전 세계 시장의 각 부분에서 재앙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영국 10년 만기 국채(gilts) 이자율이 치솟았다. 2010년대에 많은 국가들이 재정적자 기조를 유지했음에도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는데 도대체 왜 그런 것인가? 첫째, 금융위기는 은행은 물론 다른 금융기관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그들로 하여금 안전하고 유동성이 높은 자산인 국채에 투자하게 만든다. 둘째, 외국의 투자자들도 이러한 필요성을 느낄 것이고 따라서 그들도 기축통화를 보유한 미국이나 유로와 같은 안전한 곳으로 투자를 옮겨가게 한다. 2022년 영국은 위 두 가지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파운드화는 기축통화도 아니며 지금 당장 불황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어 안전 자산이나 유동성 자산에 대한 효과가 발생하지도 않았다. 영국이 재정적자 기조를 발표하자 사람들은 보유한 현금을 빌려주길 꺼려했고 따라서 이자율은 상승했다.

현대통화이론 신봉자들은 그 이론에 따라 이자율은 영국의 중앙은행이 허가할 때만 상승할 수 있으며 언제든 장기국채를 사들임으로써 이자율을 낮출수도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확장적 금융정책은 높은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2010년대 거시 경제에 대한 명제를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1. 현금을 풀면 결국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2010년대로 부터 얻은 큰 교훈중 하나는 양적완화가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것이라는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8년부터 13년까지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고, 0%대에 유지할 것을 약속했으며 기존에 발행된 다양한 장기채권들, 국채나 회사채 등을 사들이면서 유례없는 양적완화를 시행하였다. 수많은 주류경제학자들은 우려를 표명했으며 버냉키 연방의장에게 인플레이션을 경고하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지만 인플레이션은 없었다.

몇몇 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 실현되지 않았음을 보고, 인플레이션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크게 위험하지 않다고 해석했다. 또한 물가수준은 금융정책이 아니라 재정정책에 더 크게 반응한다는 믿음을 심어주기도 하고, 인구, 노령화 또는 정치불안 같은 다른 요소들에 관심을 돌리기도 했다. 심지어 인플레이션은 영원히 사라진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발생한 급작스럽고 거센 인플레이션의 재등장은 많은 사람들을 당황 시켰다. 미연방은행도 역시 인플레이션이 크게 오르는 것을 목격하고 1년이나 가만히 지켜본 것을 보면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과 그 직후 미연방은행은 다시한번 거대한 규모의 확장적 금융정책을 펼쳤으며, 그 규모는 금융위기 이후와 비교해도 훨씬 더 컸다. 2010년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버냉키 시절 이상의 인플레이션이 찾아올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인플레의 수준이 엄청나게 높았다. 사람들은 이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수요와 공급 충격의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 논쟁해왔지만 일반적으로 수요 고급 모두의 영향을 다 받은 것을 인정하고 있다. 수요 부문은 재정과 금융정책이 함께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재정 확장의 효과가 사라질 정도로 오랜 시간 이후이긴 하지만 강력한 고금리 정책을 펼칠 결과로 인플레이션이 잠잠해 지면서 금융정책이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 상황을 종합해보면 금융정책이 총수요를 변화시키는 주원인이 된다고 주장하는 신케인지언이론의 승리로 보여진다. 2010년대의 확장적 금융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지 총수요가 침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양적완화는 확장적 재정의 도움도 있었지만 금융위기가 남긴 커다란 구멍을 채울만큼 충분하지 못했다. 최근의 결과는 총수요가 팬데믹 이후 급격하게 회복되었으며 낮은 실업률과 경제성장의 회복등과 함께 확장적 금융정책을 시행하여 불에 기름을 붇는 역할을 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020년 5월경 폴 크루그먼은 많은 사람들이 펜데믹 이후의 기나긴 경기침체를 예상하고 있을 때, 일단 코로나 사태가 지나가면 빠른 경기회복을 예상하는 글을 남겼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현재 상황은 통화론자들의 승리로 해석될 가능성도 있다. 밀턴 프리드먼의 추종자인 이들은 현금과 은행지불준비금을 포함한 본원통화가 인플레이션의 주범이라고 생각했다.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2010년대 시행한 모든 양적완화 정책은 이 본원통화를 거의 상승시키지 못했으나 2020년과 2021년에는 폭발적인 증가를 보였기 때문이다.

요컨데, 현재 우리는 2010년대 걱정했던 자산 버블에 대한 우려를 버리고 과도한 재정확장에 대한 걱정을 해야할 것이다. 물론 2010년대 얻었던 모든 교훈을 잊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민간 부문의 금융 시스템은 정부의 안정화정책 없이는 본질적으로 취약함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총수요는 정부가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통해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정말 중요하다. 케인즈 학파의 거시경제에 대한 직관은 2010년대는 물론 그 이전, 그리고 현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Written on December 27,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