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과 공급량
사람들은 때때로 학자들에게 사소한 문제로 트집을 잡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곤 한다. 그러나 그 트집 잡기처럼 보이는 주장들이 실제로 정말 요점인 경우가 있다.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다.
“테슬라의 가격 인하는 테슬라 차량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지 않을 것이다. 단지 수요량의 증가에 불가하다.”
라거나
“최근 달걀 가격의 급등은 달걀의 수요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수요량만 줄이는 것으로 봐야한다.”
등의 이야기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종종 추가적으로 “다른 모든 조건들이 일정하다면”이라는 조건을 습관적으로 붙인다.
수요의 증가나 감소는 수요 곡선 자체가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이동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공급의 변화도 동일하다. 이에 반해, 수요량 또는 공급량의 증가와 감소는 해당 곡선의 위치는 그대로 유지하며 그 곡선 위에서 값들이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수요량이나 공급량의 변화가 다른 변수의 변화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지 평가하는 탄력성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도출할 수도 있지만 잠시 무시하자. 지금 집중해서 생각해 볼 것은 곡선의 이동과 곡선 상에서의 이동, 이 두 가지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다.
당신이 꿈에서 외국어를 하는 사람을 만나 이해하고 대화하는 정도가 되어야 제대로 그 외국어를 정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주장이 사실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공급과 공급량(수요와 수요량)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다음의 문장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야 한다.
“신규 주택의 수가 늘어난다고 해도 주택 공급이 늘지는 않는다.”
수요는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 지를 의미한다. 달걀 가격의 급등은 사람들이 달걀을 덜 사게 만들지만 예전보다 달걀을 덜 좋아하게 하지는 않는다. 다시말해, 사람들이 가격 변화 이전에 비해 달걀을 많이 살 의향이 줄어들었다는 의미이다. 달걀에 대한 수요는 변하지 않고 수요량이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수요 곡선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특정 상품을 더 많이 원할 때 수요는 증가한다.
공급은 간단히 이야기해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달걀의 예를 계속 사용해 보자. 조류독감의 영향으로 달걀 생산능력이 감소한다면 공급곡선은 감소된 생산능력으로 인해 왼쪽으로 이동한다. 한편, 달걀 소비에 대한 부정적인 연구보고라든지 전반적인 채식주의의 유행이 일어난다면 달걀 수요가 왼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달걀 수요의 감소는, 현재 공급곡선에 특별한 영향이 없는 경우, 시장 가격의 하락을 가져온다. 공급 곡선은 그 자리를 유지하지만 공급 물량은 줄어든다. 즉 달걀 생산 능력의 변화는 없지만 줄어든 수요의 여파로 공급자들은 낮아진 새로운 가격에 달걀을 예전만큼 생산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수요와 수요량, 공급과 공급량에 대한 기본적인 차이를 이해해야만 신규 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논리로 부동산 가격 폭락을 거론하는 사람들의 허구를 이해할 수 있다. 공급을 늘리는 것은 공급 곡선의 이동, 즉, 새로운 주택을 건설할 수 있는 능력을 높여야 가능하다. 이는 더 많은 집을 짓는 것, 공급량 증가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제 엄격한 규제를 통해 주택 공급이 고정된 도시가 있다고 상상해 보자. 만약 주택 규제가 새로운 주택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한다면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이다. 공급 곡선이 변화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고정된 공급 곡선 하에서도 공급량은 계속 증가할 수 있다. 수요가 증가하면, 즉 수요 곡선이 오른쪽으로 이동한다면, 공급 곡선이 고정된 상태에서도 공급량은 증가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가격 상승도 동반될 것이다. 따라서 추가적인 가격을 충분히 지불할 용의가 있는 부유한 사람들이 원할 때에만 새로운 집을 건설하게 될 것이며, 신규 주택의 건설이 발생했음에도 주택 공급은 늘지 않는다.
이 도시에서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신규 주택 건설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주택건설 능력을 기존보다 높이는 방향으로 주택 시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다세대 주택에 대한 제한, 아파트 고도 제한, 특정 부지에 대한 제한 등의 완화라든지 주택 건설에 대한 복잡한 승인 절차의 간소화 등의 정책 변화를 고려해 볼 수 있겠다. 이러한 대책이 발표 된다면 비로소 공급의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피상적으로 비슷하게 보이는 공급과 공급량의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해 많은 정치가나 정책 입안자들이 혼란스러운 논리를 펴고 있다. 때때로 주택 가격이 높은 곳에서 새로운 주택이 건설되는 것을 보고 가격하락을 우려한다. 그러나 이 새로운 주택은 가격을 하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높은 가격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에게 배분될 값비싼 주택이다. 이는 주택공급 증가와 주택 공급량 증가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