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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그로스만-스티글리츠 역설
이론경제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결과 중 하나는 그로스만-스티글리츠 역설(Grossman-Stiglitz Paradox)이다.
효율적 시장 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 EMH)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금융시장 가격이 이미 기초자산의 가치에 관한 모든 이용 가능한 정보를 반영하고 있다는 개념이다. 그런데 1980년, Sanford Grossman과 Joseph Stiglitz는 왜 EMH가 완전히 옳을 수 없는지를 증명했다. 그 논리는 매우 단순하다: 정보를 찾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주식, 채권, 부동산의 실제 가치에 대한 정보를 찾아내더라도 그것을 거래에 활용해 수익을 얻을 수 없다면, 누가 굳이 그 수고를 감수하겠는가? 그리고 아무도 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정보는 애초에 어떻게 가격에 반영될 수 있겠는가? Grossman과 Stiglitz는 금융시장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
얼마전 Daron Acemoglu, Dingwen Kong, Asuman Ozdaglar(2026)가 AI에 대해 유사한 문제를 제기했다. Acemoglu 등은 생성형 AI가 세상의 모든 정보를 사람들의 손끝에 가져다준다면,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스스로 배울 유인을 잃게 되고, 결국 세계 전체의 지식 기반에 새로운 지식이 우연히 더해질 가능성마저 차단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생성형 AI, 특히 에이전틱 AI(agentic AI)가 인간의 학습 유인과 사회의 정보 생태계의 장기적 진화를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연구한다… 학습은 범위의 경제(economies of scope)를 나타낸다: 비용이 드는 인간의 노력은 자신의 맥락에 관한 사적 신호와, 공동체의 일반 지식 축적에 기여하는 ‘희박한’ 공적 신호를 동시에 생산하며, 이는 학습 외부효과를 발생시킨다. 에이전틱 AI는… 인간의 노력을 대체하는 추천을 제공한다… 에이전틱 AI는 현재의 의사결정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반면, 장기적인 집단 지식을 유지하는 학습 유인을 잠식할 수도 있다… 경제는 결국 일반 지식이 소멸하는 ‘지식 붕괴 정상 상태(knowledge-collapse steady state)‘로 수렴할 수 있으며, 이는 고품질의 개인화된 조언이 제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다.
요컨대, Acemoglu의 위 논문은 개별 인간이 ‘바퀴를 재발명’하려는 시도, 즉, 단순히 검색하는 대신 스스로 무언가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통해 인류 전체가 새로운 지식을 축적해왔다고 본다. 이는 막대한 노력의 낭비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전체적인 지식 기반을 풍부하게 만든다.
여기서의 핵심 논지는 이렇다: AI는 모든 사람을 나태하게 만든다. 코드를 처음부터 직접 작성하거나, 수학 정리를 스스로 증명하거나, 어떤 지식을 직접 탐구하는 대신, 모든 것을 AI에게 맡겨버린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은 이미 알려진 질문에 대한 정답만을 얻게 되고, 결국 새로운 무언가를 더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그로스만-스티글리츠 역설이다.
실제로 이러한 현상의 징후는 이미 감지되고 있다. 사람들이 웹사이트 대신 AI를 통해 정보를 얻으면서 웹사이트 트래픽이 급감하고 있다. 예컨대 테크 전문 매체들은 빠르게 독자를 잃고 있다.

또한 AI를 활용한 코딩은 프로그래머의 역량을 퇴화시킨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 문제는 AI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터넷 자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물론 사람들은 LLM에게 수학을 가르쳐달라고 하거나 코드를 작성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LLM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Math Exchange나 Stack Exchange를 통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동일한 문제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손끝에 있다면, 굳이 바퀴를 재발명하는 데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Neal Stephenson이 이미 2011년에 지적했듯, 이는 모든 이가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데 그쳐 새로운 것이 출현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AI 역시 새로운 지식을 생성할 수 있다면 어떨까? AI는 결국 환각(hallucination), 즉 무작위적인 오류를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에이전트들이 무작위로 잘못된 것을 시도하다 보면, 때로는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한 우연한 발견들이 AI의 일반적인 지식 체계에 편입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된다면, AI는 전체 지식 총량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인간이 지식의 유일한 장기적 저장소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