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angyong · 24 min read
국제금융 무정부 상태
달러의 시대가 끝나면 어떻게 될까?
그 시작점으로 모두가 미국에서 돈을 빼내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금 가격 상승은 세계가 국제 금융 무정부 상태의 시기로 접어들 수 있다는 신호로 간주할 수도 있다. 금은 변동성이 크고 공급이 제한되어 있지만, 다시 한 번 세계의 준비자산이 되는 것을 막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달러는 다른 국가 통화들에 비해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금을 포함해 보면 전 세계 준비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각국 정부와 민간 투자자들이 모두 빠른 속도로 금을 매입하고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대한 두려움이 그 주요 이유라고 보도했다. 세계는 미국이 더 이상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고 달러도 더 이상 준비통화가 아닌 시대, 그러나 중국은 그 공백을 메우려 하지 않고 유럽과 다른 강대국들도 그러지 못하는 금융 무정부 상태의 시기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금이 준비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난 것이 사람들이 금에 투자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금 가격이 올랐기 때문인지 물었다. 사실 이 둘은 같은 말이다. 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 투자자들이 더 많은 금을 사게 되고, 그 결과 가격도 오른다. 즉 투자자들이 금을 더 많이 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쨌든 “국제 금융 무정부 상태”라는 개념을 좀 더 확장해 볼 가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세계 금융이 미국 달러에 기반하고 있다는 막연한 인식은 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달러가 그 지위를 잃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잘 모른다. 사실 사람들의 혼란은 어느 정도 타당한데, 달러가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방식이 몇 가지 서로 다른 차원이 있기 때문이다.
- 많은 국가와 기업들이 달러로 결제한다.
- 많은 국가들이 달러 표시 자산(미국 국채 등)을 준비금으로 보유한다.
- 많은 은행과 기업들이 대출 담보로 달러를 사용한다.
오랫동안 달러는 이 모든 영역에서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들이 모두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따라서 “국제 금융 무정부 상태”를 생각할 때는, 이런 각각의 용도에서 달러의 역할이 어떻게 변할지를 따로 생각해야 한다.
국제 금융 시스템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확고한 이론은 없다. 하지만 최근 몇 주 동안의 사건들은 몇 가지 질문을 던져 주었다.
금 지지자들은 부분적으로 옳았고, 비트코인 극단론자들은 틀렸다
지난 몇 주,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분명해진 한 가지 교훈은 사람들이 국제적 불확실성이 커질 때 여전히 금을 안전자산으로 본다는 점이다. 다음은 금 가격 차트다. 
금은 팬데믹 시기에 올랐지만, 본격적으로 급등한 것은 2024년 이후였다. 이는 당시 빠르게 둔화되던 미국의 인플레이션 때문이 아니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여러 중앙은행이 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트럼프가 다시 집권해 고율 관세, 그린란드 침공 위협, 연준 독립성 위협, 대규모 재정 적자 확대 등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보이자, 특히 아시아를 중심으로 많은 투자자들이 금을 대거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전했다.
최근 몇 년간 중국이 주도한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금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극도로 보수적인 이 투자자들은 지정학적 혼란 속에서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으로 기대하며 실물 금에 다시 매력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금 ETF로의 자금 유입은 수익과 분산투자를 노리는 새로운 투자자 집단이 등장했음을 보여 준다… 아시아 투자자들이 선두에 서고 있다… 지난 2년간 아시아 기반 ETF의 금 보유량은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일본과 한국의 대형 펀드들도 크게 늘렸다.
블룸버그의 더 긴 설명에서도 핵심은 다음과 같다.
금은 상대방 위험(counterparty risk)이 없는 자산으로, 대부분의 금융 증권과 달리 기업이나 국가의 신용도에 의존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치솟는 정부 부채는 투자자들의 국채와 통화에 대한 신뢰를 흔들었다. 이른바 ‘가치 훼손 거래’ 속에서 많은 투자자들이 가치 저장 수단을 찾으며 금과 은 등 귀금속으로 몰리고 있다…
투자자들은 트럼프가 연준에 금리 인하 압박을 가하는 가운데 미국 인플레이션 전망도 주시하고 있다.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금은 저금리 환경에서 기회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에 매력도가 높아진다.
보다 근본적으로 보면, 금의 가치는 사람들이 금의 가치를 어떻게 믿느냐에 달려 있다. 과거 국가와 통화가 신뢰할 수 없고 전자 결제가 불가능했던 시절에는 국제 결제를 위한 최선의 수단이 금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시 그런 상황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대 인플레이션이 높아지거나 국제적 혼란이 커질 때, 이른바 ‘골드버그(goldbugs)’라 불리는 사람들은 금을 산다. 다른 투자자들도 이런 수요를 예상하며 금을 매입한다.
하지만 왜 하필 금일까? 국가 정부에 의존하지 않는 자산은 금 말고도 많다. 실제로 은 가격도 함께 올랐다. 그리고 비트코인도 있는데, 이는 국가가 아니라 알고리즘과 전 세계에 분산된 채굴자들의 계산과 전력 사용에 의해 뒷받침된다. 오랫동안 비트코인 지지자들, 특히 비트코인이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을 장악할 것이라고 믿는 ‘맥시멀리스트’들은 이 암호화폐가 희소성과 정부로부터의 독립성 덕분에 불안정한 법정화폐 시대의 안전자산, 즉 ‘디지털 금’이 되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달 사이 이런 이야기는 큰 타격을 입었다. 투자자들이 달러에 대한 신뢰를 잃기 시작하자 비트코인도 함께 매도되며 가격이 급락했다. 
더 넓게 보면, 비트코인은 최근 몇 년간 금과 같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미국 주식시장과 더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이는 투자자들이 금과 비트코인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비트코인은 미국 경제가 잘될 때 수혜를 보는 자산으로 생각되는 반면, 금은 국가 전체가 어려울 때 필요한 자산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결국 안전자산이란 일종의 조정 게임이다. 사람들이 국제 금융 무정부 상태에 대비하기 위해 무엇을 살지 집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비트코인이 아니라 금이 선택되고 있다.
물론 금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실제로 금과 은 가격이 급락한 날도 있었다. 
이는 단순히 과열이 식은 것일 수도 있고, 트럼프가 연준 의장으로 케빈 워시 같은 강경 통화주의자를 지명했다는 보도로 달러 가치 하락 우려가 완화된 탓일 수도 있다.
어쨌든 금의 급락은 금 기반 국제 금융 체제가 달러 중심 체제보다 본질적으로 불안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 준다. 많은 사람들, 특히 골드버그들은 금의 희소성과 중앙은행 개입으로부터의 독립성이 금 중심 경제를 안정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금 가격을 관리하는 신뢰할 만한 대규모 주체가 없다는 점 때문에 급격한 변동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만약 글로벌 결제와 담보 시스템이 금에 기반한다면, 이런 가격 변동은 그 시스템 자체에도 큰 혼란을 줄 것이다.
따라서 골드버그들은 금이 지속적인 안전자산이라는 점에서는 옳지만, 그것이 바람직한 체제라는 점에서는 틀렸다. 금은 더 나은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선택되는 최후의 수단에 가깝다.
달러 결제는 달러 준비금 보유에 중요한가?
최근 국제 금융 시스템의 변화는 트럼프의 복귀에서만 시작된 것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중요한 계기였다. 강대국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일부 자금이 금으로 향했다. 동시에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에 대해 대규모 금융 제재를 가해 러시아 은행과 기업들을 국제 금융 시스템, 특히 SWIFT 결제망에서 사실상 배제했다. 이러한 제재가 러시아에 얼마나 큰 타격을 주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중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은 달러 기반 국제 금융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이 잠재적 취약점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대체 결제 시스템 구축에 나서기 시작했다. 중국은 위안화 기반 결제 시스템 개발을 가속화했고, 이에 따라 국경 간 결제에서 위안화 비중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 직후 글로벌 결제에서 위안화 비중도 증가했다. 
인도처럼 비교적 미국과 우호적인 국가들조차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달러의 세계 기축통화 지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다. 많은 사람들은 달러 결제가 전 세계 기업들로 하여금 결제를 위해 많은 달러(혹은 유동성 높은 달러 자산)를 보유하도록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현대 금융 시스템에서는 필요할 때 즉시 달러를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인도 은행이 중국 은행에 지급해야 한다면, 외환시장에서 루피를 달러로 바꾼 뒤 전달하고, 중국 은행은 다시 이를 위안으로 바꾸면 된다. 이 과정에서 누구도 달러를 오래 보유하지 않는다. 따라서 달러로 표시되고 달러로 결제되는 거래가 오늘날에는 큰 달러 수요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
실제로 최근 트럼프로 인한 달러 약세 이전까지, 러시아 제재 이후에도 달러는 오히려 강세를 보였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달러 준비금 비중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물론 달러 결제와 준비금 사이의 연관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2020년 3월 코로나 금융 패닉 당시에는 잠시 국제 결제를 위한 달러 조달이 어려워졌고, 각국 은행들은 이런 사태에 대비해 일정 수준의 달러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것이 소폭의 달러 수요를 만들어 낸다.
이 때문에 비(非)달러 결제 시스템의 확산은 각국이 장차 달러를 포기하기 위한 사전 준비 단계일 수도 있다. 굳이 달러를 거치지 않아도 결제가 가능하다면, 국내 금융 시스템에서 갑작스러운 달러 부족을 걱정할 필요도 줄어든다.
만약 중국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흔들려 한다면, 가장 먼저 결제 시스템에서 달러를 대체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위안화 결제를 ‘달러 축출’ 시도의 일부로 보고 있다.
“위안이 달러를 대체한다”는 시나리오
이는 중국이 위안화를 세계 기축통화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중국은 위안화 결제 확대뿐 아니라 대규모로 금을 축적하고 있다. 《코베이시 레터》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중국은 비공식적으로 금을 계속 쌓고 있다… 골드만삭스 추정에 따르면 11월에만 10톤 이상을 매입했는데 이는 공식 발표의 약 11배다… 9월에도 추정 매입량은 15톤으로 공식 수치의 10배에 달했다… 12월에는 공식적으로 0.9톤을 추가해 총 보유량이 사상 최대인 2,306톤에 이르렀다… 이는 14개월 연속 매입이었다… 공식 수치가 실제의 10%에 불과하다고 가정하면 2025년에만 약 270톤을 사들인 셈이다.
지금으로서는 이는 전반적인 금융 무정부 상태로의 이동의 일부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이 달러 중심 체제를 자국 통화 기반 체제로 대체하려는 준비일 수도 있다.
20세기 초 파운드화에서 달러로 기축통화가 이동했던 전례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대규모 차입국이었고 미국은 주요 채권국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금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대거 이동했다. 이후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달러는 완전히 파운드를 대체했고, 이는 브레튼우즈 체제로 공식화되었다. 당시 미국은 세계 금의 최대 4분의 3을 보유하고 있었다.
만약 세계가 일시적으로 금 중심의 금융 무정부 상태를 거친다면, 중국이 대규모로 금을 사들여 위안화를 금과 같은 통화로 만들려 할 가능성도 이론적으로는 존재한다. 중국의 막대한 경제 규모 역시 강력한 설득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그런 의도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에는 위안화를 약세로 유지하기 위해 개입하고 있는데, 이는 위안을 매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수출을 촉진해 부동산 침체의 충격을 완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 내 일부 경제학자들은 약한 위안화에 대해 재고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피터 랜더스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최근 중국의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몇 명은 위안화의 의미 있는 절상이 소비를 촉진하고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수입과 수출 사이의 기본적 균형을 목표로 하고, 강하고 세계적으로 쓰이는 통화를 추구해야 한다”…
전 인민은행 고위 관료 성송청은 중국과 미국 소비자의 구매력을 균형시키려면 환율이 달러당 7위안이 아니라 5위안, 심지어 4위안 수준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견해는 중국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고 있지만 아직 공식 정책이 되지는 않았다. 랜더스는 강한 위안과 약한 달러가 미국 제조업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지만, 폴 크루그먼은 이에 매우 회의적이다.
크루그먼은 무역적자에서 달러의 기축통화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은 제한적이며, 제조업 비중 하락의 주요 원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독일과 중국 사례를 들어서도 같은 논지를 펼친다.
역사도 크게 희망적인 신호를 주지 않는다. 두 차례 세계대전 동안 영국이 기축통화 지위를 잃었다고 해서 제조업이 부활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만성적인 제조업 무역적자 국가가 되었다.
따라서 중국 중심의 글로벌 금융 체제로의 이동이 중국 소비자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미국을 다시 산업국가로 만드는 데는 큰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위해서는 통화정책이 아니라 산업정책을 살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