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angyong · Economics · 34 min read
드디어 뉴케인스지언 거시경제학에 노벨상이 돌아왔다
밥 홀과 마이크 우드퍼드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을 계기로, 미시적 기초를 갖춘 뉴케인스주의 거시경제학의 등장과 의의를 돌아본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미시경제학 기반 거시경제 이론의 가장 중요한 창시자 가운데 두 사람인 밥 홀(Bob Hall)과 마이크 우드퍼드(Mike Woodford)에게 돌아갔다.
우선 이번 수상은 너무나 늦었다고 말하고 싶다. 홀의 연구 범위는 놀라울 정도로 넓다. 그의 업적을 잘 요약한 글을 읽고 싶다면 알렉스 타바록(Alex Tabarrok)과 타일러 코웬(Tyler Cowen)의 글을 추천한다. 이 두 사람은 언제나 그렇듯 좋은 해설을 제공한다. 마이클 우드퍼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이 분야의 교과서적인 저서를 집필한 사람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뉴케인스주의 경제학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뉴케인스주의 경제학이 무엇인지, 어떻게 등장했는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왜 지금에서야 노벨상을 받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먼저 현대 거시경제학의 역사를 간략하게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하자.
1. 거시경제학은 왜 미시적 기초를 필요로 하게 되었는가?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거시경제 총량 변수들 사이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거시경제를 이해하려 했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을 던졌다.
- 소득이 10% 증가하면 소비지출은 얼마나 늘어날까?
- 인플레이션이 3%포인트 상승하면 실업률은 얼마나 하락할까?
문제는 상관관계가 곧 인과관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상승할 때 실업률이 하락하는 현상을 관찰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러한 상관관계를 필립스 곡선(Phillips Curve)이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좋아, 인플레이션을 높이면 더 많은 사람을 취업시킬 수 있겠군.”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해 보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돈을 더 찍어내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려도 실업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문다. 앞서 관찰했던 상관관계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 문제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되어 버린다.
이것은 1970년대에 실제로 일어난 일을 많은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아주 단순화해 설명한 것이다. 물론 그것이 당시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는지는 별개의 이야기다. 어쨌든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은 경제학계 전체가 거시경제를 모형화하는 방식을 재고하도록 만들었다.
많은 연구자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경제정책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거시경제의 요소는 무엇인가? 우리가 확실하게 의지할 수 있는 기초는 무엇인가? 그래야 어떤 변화를 시도하더라도 우리 자신의 이론이 무너지는 일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받아들인 답은 바로 ‘미시적 기초(microfoundations)’였다.
이들은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행동을 결정하는 기본 요인들이 금리나 정부지출 같은 거시경제 정책이 바뀐다고 해서 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다음 세 가지 요인이 중요했다.
- 기술(Technology)
- 소비자 선호(Consumer preferences)
- 사람과 기업이 미래에 대한 기대를 형성하는 과정
물론 이 세 가지가 경제정책의 변화에도 정말 그대로 유지될까? 완전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거시경제학자들이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그리하여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경제학자들은 개인과 기업의 행동에 관한 이론을 바탕으로 거시경제 모형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형을 미시적 기초를 갖춘 거시경제 모형(microfounded macro models)이라고 부른다. 이 세 가지 미시적 기초 가운데 마지막 요소인 기대(expectations)는 특히 다루기 까다로웠다. 사람들이 기대를 형성하는 과정을 어떻게 설정하든, 정책 당국이 사람들을 반복적으로 놀라게 하면서 체계적으로 속일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언제나 생기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결국 정부의 속임수에 익숙해지고 이를 간파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비자와 기업이 평균적으로는 모형을 만드는 경제학자들만큼 현명하게 행동한다고 가정하기 시작했다.
경제학자들이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모형을 만든다면, 그 모형은 모형 속에 등장하는 일반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사람들은 대체로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있으며, 그 이해를 바탕으로 계획을 세운다.
이러한 생각을 합리적 기대(rational expectations)라고 부른다.
2. 밥 홀과 합리적 기대의 등장
1978년, 밥 홀은 많은 경제학자에게 이러한 접근법이 올바른 방향이라는 확신을 심어 준 매우 영향력 있는 논문을 발표했다. 홀은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처음 제시한 간단한 아이디어를 검증하고자 했다. 사람들은 소비 계획을 미리 세워 놓는다면, 소비 수준의 변화는 완전히 무작위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지난 분기의 어떤 정보도 이번 분기의 소비 변화 예측에 도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지난 분기의 어떤 요인이 이번 분기의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면, 사람들은 이미 지난 분기에 그 정보를 반영해 소비를 조정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홀은 실제로 소비에 중요할 것처럼 보이는 여러 변수, 특히 전 분기의 소득이 소비 변화 예측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원한다면 존 코크레인(John Cochrane)의 글을 추천한다. 브라이언 알브레히트(Brian Albrecht)도 이 결과를 간결하게 잘 설명한 글을 썼다.
얼핏 보면 이것이 그다지 중요한 결과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증거가 없다는 사실이 부재의 증거는 아니기 때문이다. 홀은 단지 소비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변수들을 검증 대상에서 빠뜨렸을 수도 있다. 실제로 홀은 미래의 소비 변화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는 변수 하나를 발견했는데, 바로 주가였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도 기본 이론이 완벽하게 성립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홀의 결과가 전통적인 케인스주의 소비 이론을 배제한 것도 아니다. 정부지출이 사람들의 예상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증가한다면, 미래의 소비 변화에 예측 가능한 패턴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서도 당장의 소비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연구는 두 가지 이유에서 중요했다.
첫째, 사람들이 경제적 의사결정을 할 때 미래를 미리 계획한다면, 정책 당국은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인지 약속함으로써 오늘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둘째, 경제학자들이 소비 변화조차 예측할 수 없다면, 소비자들은 미래의 소비를 계획하는 데 경제학자들만큼 능숙하다는 뜻이 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경제정책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 사람들이 더 많이 소비하게 만들고 싶거나 기업들이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하게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 대다수가 정책 당국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3. 실물경기변동 이론의 한계
이에 따라 거시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경제 모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성과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초기에 큰 인기를 끌었고 나중에 노벨상까지 받게 된 이론 가운데 하나가 실물경기변동 이론(Real Business Cycle Theory, RBC)이었다. 이 이론은 경기침체와 경기호황이 오로지 기술 진보율의 변화 때문에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엔지니어들이 어느 분기에 평소보다 덜 유용한 기술이나 제품을 발명한다면,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는 식이다. 기술 혁신이 경제성장에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 미국 경제가 인공지능(AI) 붐으로부터 얼마나 큰 힘을 얻고 있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기술 진보가 단순하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경기변동을 일으킨다는 주장은 실증적 증거와 잘 맞지 않는다. 특히 실물경기변동 이론이 예측하는 것과 달리, 생산성의 급격한 상승이 반드시 경기호황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도 있었다. 실물경기변동 모형에 따르면 통화정책, 즉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정책은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실물경기변동 이론의 창시자인 에드 프레스콧(Ed Prescott)은 통화정책이 “비를 내리게 하는 데 있어 기우제만큼이나 효과적”이라고 유명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가 관찰하는 현실은 다르다. 통화정책은 실제로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무언가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는 것이다. 거시경제학자들은 통화정책이 어떻게, 왜 성장과 고용을 촉진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러 경제학자는 연방준비제도(Fed)가 채권을 매입하는 것이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의 취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대체로 뉴케인스주의(New Keynesianism)라는 이름 아래 묶였다.
존 코크레인을 비롯한 여러 학자가 지적했듯이, 사실 이 명칭은 다소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와 그 후계자들은 재정정책, 즉 정부지출과 조세에 관해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반면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뉴케인스주의자들은 거의 전적으로 통화정책에 집중했다. 초기 뉴케인스주의 거시경제학은 케인스보다 밀턴 프리드먼에게 훨씬 더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관심이 연준에 집중되었고, 재정 부양책이라는 아이디어는 처음에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4. 뉴케인스주의 경제학의 핵심: 가격은 왜 느리게 조정되는가?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에 관한 다양한 이론이 등장했다. 뉴케인스주의 경제학이 노벨상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분야에는 너무나 많은 창시자와 기여자가 있어서, 과연 누구에게 상을 주어야 할지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그레그 맨큐(Greg Mankiw), 데이비드 로머(David Romer), 스탠리 피셔(Stanley Fischer), 조지 애컬로프(George Akerlof), 재닛 옐런(Janet Yellen), 올리비에 블랑샤르(Olivier Blanchard), 노부히로 키요타키(Nobuhiro Kiyotaki), 조르디 갈리(Jordi Galí), 마크 거틀러(Mark Gertler), 존 테일러(John Taylor), 기예르모 칼보(Guillermo Calvo) 등 수많은 경제학자가 이론의 토대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 이들의 기여 가운데 상당수는 가격이 거시경제의 변동에 맞춰 빠르게 조정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총수요를 감소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자. 1980년처럼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수도 있고, 2008년처럼 주택시장 거품이 붕괴한 뒤 금융공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긴다.
기업들은 왜 단순히 가격을 인하해 기존의 생산량을 유지하지 않는 것일까?
가격이 너무 느리게 하락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있다면, 기업들은 가격을 조정하는 대신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뉴케인스주의 이론의 상당 부분은 기업들이 가격을 인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밥 홀 역시 이 분야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 기본적인 뉴케인스주의 모형은 금리가 GDP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설명하지만, 그것이 왜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성장률이 둔화한다고 해서 왜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 것일까? 이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문제다.
홀은 2005년 논문에서 수요 변화에 따라 임금이 느리게 조정될 수 있다는 모형을 제시했다. 경기침체가 발생하면 기업들은 임금을 즉시 삭감할 수 없기 때문에, 대신 노동자를 해고하게 된다는 것이다.
5. 마이크 우드퍼드: 흩어진 이론을 하나의 체계로 통합하다
뉴케인스주의 경제학은 소수의 유명한 창시자가 만들어 낸 단일한 발명품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많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지적 흐름에 가까웠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러한 아이디어들을 하나로 종합해 중앙은행가들이 실제 통화정책을 수립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단순한 모형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바로 마이크 우드퍼드였다.
우드퍼드는 고(故) 훌리오 로템버그(Julio Rotemberg)와 함께 쓴 논문에서 간결한 뉴케인스주의 모형을 제시했다. 경기침체기에 기업들이 가격을 인하하기 어려운 이유에 관해서는 복잡한 설명을 제시하는 대신, 우드퍼드는 어떤 이유에서든 각 분기에 가격을 변경할 수 있는 기업이 일부에 불과하다고 가정했다. 이 아이디어는 창시자인 기예르모 칼보의 이름을 따서 칼보 가격설정(Calvo pricing)이라고 불린다. 모형의 나머지 부분은 비교적 단순하다.
우드퍼드는 홀의 1978년 논문에서 사용한 것과 동일한 기본적인 소비 평탄화(consumption smoothing) 모형을 활용했다. 이 모형에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비하고 얼마나 저축할지에 관한 결정이 금리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중앙은행, 즉 연준이 인플레이션과 실업 사이의 위험을 균형 있게 조절하는 간단한 규칙에 따라 금리를 결정한다고 가정했다. 물론 몇 가지 가정이 더 있지만, 이것이 모형의 기본 골격이다.
이처럼 단순한 모형은 통화정책의 방향을 제시한다. 우선 중앙은행이 단기적으로 경기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1980년대 초반 폴 볼커(Paul Volcker)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을 때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금리를 영구적으로 낮게 유지한다고 해서 고용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
또한 2008년 금융위기처럼 민간 수요가 급감할 때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단기적으로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점도 설명한다. 다시 말해, 우드퍼드의 모형은 이후 유명한 저서로 확장되었으며,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거시경제학계에서 형성된 폭넓은 합의를 하나로 종합한 결과물이었다. 우리는 총수요가 실제로 중요한 경제적 힘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경제가 부정적인 수요 충격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그 결과 생산량 감소와 실업 증가 등 심각한 혼란이 발생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또한 통화정책이 단기적으로 경제를 부양할 수 있지만, 그 효과는 장기적으로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우드퍼드는 이러한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중앙은행이 경제를 안정시키는 데 필요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모형을 제공했다. 이 모형은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이었기 때문에 전 세계 중앙은행의 표준적인 도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우드퍼드가 이론을 종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모형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다.
2008년과 2009년, 미국과 유럽 경제는 엄청난 규모의 부정적인 수요 충격을 받았다. 금리를 0%까지 인하했는데도 경제는 정상화되지 않았다.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6. 금융위기 이후: 선제적 안내, 양적완화, 재정 부양책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했던 ‘다른 대책’에 관해서는 세 가지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있었다.
첫 번째는 우드퍼드의 모형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으며, 홀의 연구에서 제시된 기본 아이디어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바로 선제적 안내(forward guidance)다. 중앙은행이 경기침체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금리를 낮게 유지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다면, 소비자들이 오늘 더 많이 지출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그 결과 경기침체에서 더 빨리 벗어날 수 있다.
두 번째는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QE)다. 연준이 단기 채권뿐 아니라 장기 채권도 매입해 장기금리를 낮추는 정책이다. 양적완화는 우드퍼드의 원래 모형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는 나중에 이 정책을 지지하게 되었다.
세 번째는 재정 부양책(fiscal stimulus)이었다. 금리가 이미 0%까지 내려갔다면 정부지출은 총수요를 늘리는 더욱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물론 중앙은행이 금리를 다시 인상해 재정 부양 효과를 상쇄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뉴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에 케인스의 사상을 다시 도입하기 위해 서둘렀다. 재정 부양책이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모형을 수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홀은 2009년 논문에서 재정 부양책이 어떻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 설명했다.
정부 구매가 GDP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승수는 0.7~1.0 범위일 수 있지만, 그보다 높은 값도 배제할 수 없다. 뉴케인스주의 거시경제 모형에서도 비슷한 범위의 승수가 나타난다. 명목금리가 0%라는 하한에 도달한 경우에는 승수가 더 높아지며, 2009년이 그러한 사례였다. 이때 승수는 약 1.7에 이를 수도 있다.
홀은 이 논문에서 1978년 자신의 유명한 연구 결과와 모순되지 않으면서도 재정 부양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재정 부양책이 소비를 직접적으로 결정하는 단순한 ‘소비함수’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부양책이 기업과 소비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로는 다양하다. 특히 금리가 0%에 도달한 상황에서는 그러한 경로가 더욱 중요해진다.
우드퍼드 역시 2011년 논문에서 자신의 기본 모형을 활용해 재정 부양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 주었다. 그는 간단한 사례들을 통해 뉴케인스주의 모형에서 정부 구매의 산출 승수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들을 분석했다. 이 사례들은 수학적으로 명시적인 해를 구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가격이나 임금이 경직적이면 신고전파 모형에서보다 승수가 커질 수 있다. 다만 승수의 크기는 통화정책의 대응 방식에 결정적으로 좌우된다. 통화정책이 금리의 실효 하한에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는 승수가 1을 크게 초과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금리를 더 낮출 수 없어 발생한 산출량 격차를 일부 메우기 위해 정부 구매를 확대하면 경제적 후생이 증가한다.
결국 뉴케인스주의자들은 밀턴 프리드먼의 아이디어를 넘어, 자신들의 이론에 케인스의 사상을 다시 통합했다.
7. 뉴케인스주의 경제학의 가장 큰 성과: 2021~2023년의 인플레이션 둔화
하지만 뉴케인스주의 경제학의 가장 큰 성공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가 아니라, 어쩌면 팬데믹 이후인 2021~2023년에 나타난 인플레이션에서 찾을 수 있다. 2022년 인플레이션은 9%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연준이 금리를 인상한 뒤 2023년 초에는 약 3% 수준으로 하락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1980년대 초반과 달리 실업률이 크게 상승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플레이션이 하락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정확히 어떤 요인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밥 홀과 마이크 우드퍼드가 개척한 뉴케인스주의 거시경제학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인상적인 승리로 보인다. 이른바 ‘기적적인 디스인플레이션(immaculate disinflation)’이 발생한 가장 유력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기업들이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가격 인상을 중단했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은 자연스럽게 진정되었다.
1980년대 초반 폴 볼커가 초래했던 것처럼 총수요를 파괴할 필요가 없었다. 수많은 저소득 블루칼라 노동자가 실업 상태에 빠져 필수품 구매마저 줄여야만 기업들이 가격 인상을 멈추는 상황도 필요하지 않았다. 필요했던 것은 연준의 명확한 정책 의지와 미래를 내다보는 경제주체들의 기대였다. 바로 이것이 밥 홀과 마이크 우드퍼드의 모형을 구성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20082009년 금융위기보다도 20212023년의 경험이 뉴케인스주의 경제학의 진정한 시험대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이론에는 언제나 하나의 의문이 따라다녔다. 과거에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의 경제 상황을 실제로 형성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2022~2023년 이후의 결과를 고려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훨씬 더 명확히 ‘그렇다’에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